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최진영의 『구의 증명』 – 관계와 성장,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탐색

     

    1. 책 소개

    1) 개요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가족과 우정, 그리고 사회적 소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정체성을 찾아 가는지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구’라는 제목은 단순히 기하학적 형태를 뜻하기보다, 둥글고 폐쇄적인 세계에서 한 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작가는 소수자와 사회적 편견, 청소년기의 통증 등을 섬세하게 그려 내면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2. 등장인물

    1) 선영

    소설의 주인공으로, 고등학생 시절 불우한 가정환경과 외로운 학교생활에 시달린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선영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감각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기록하며 세상과 화해할 준비를 조금씩 해 나간다.

    2) 민혁

    선영의 친구이자, 같은 반에서 유일하게 선영을 제대로 이해해 주는 인물이다. 민혁 역시 자신의 가정 문제로 인해 상처를 안고 있지만, 밝고 긍정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어 선영에게 의지가 되어 준다. 그는 선영에게 “인간관계의 따뜻함”을 가르쳐 주는 존재로,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3) 상철

    학교에서 선영을 괴롭히는 집단의 주동자 격인 학생. 그는 과도한 폭언이나 심리적 압박으로 선영을 힘들게 만든다. 상철은 가정폭력에 노출된 배경을 지니고 있어, 자신의 좌절과 분노를 왜곡된 방식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상철을 단순한 악역으로 그리지 않고,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는” 구조를 보여 준다.

    4) 어머니

    선영의 어머니로, 하루하루를 생계에 묶여 살지만 딸을 적극적으로 돌보지 못한다. 남편과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지쳐 있으며, 선영의 내면적 갈등을 제대로 헤아려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후반부에서 모녀 간의 갈등이 터져 나오면서, 독자는 “어머니 역시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 온 한 인간”임을 발견하게 된다.

    3. 줄거리

    1) 닫힌 세계와 불안

    소설은 선영이 반복되는 학교생활과 답답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집을 떠났고, 어머니는 일에 지친 채 날선 태도로 일관한다. 학교에서는 상철을 비롯한 몇몇 학생이 집단 따돌림과 은근한 폭력을 가하며 선영을 괴롭힌다. 선영은 그들에게 직접 맞서지 못한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 내려간다.

    2) 민혁과의 만남

    일상적인 고통에 갇혀 있던 선영 앞에 민혁이 다가온다. 민혁은 선영을 괴롭히는 무리에게 직설적으로 항의하고, 두 사람은 조금씩 친분을 쌓아 간다. 이 과정에서 민혁 또한 아버지의 폭력적 성향 때문에 상처가 크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민혁은 “누군가를 구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말하며, 연대와 희망을 선영에게 불어넣는다.

    3) 갈등의 폭발

    학교 폭력은 점차 심해지고, 어머니와의 관계 역시 악화 일로로 치닫는다. 선영은 무방비 상태로 상철 무리의 집요한 괴롭힘을 견디다가, 결국 교내에서 충돌 사건을 겪는다. 동시에 어머니는 선영에게 “너도 좀 더 강해져야 한다”며 냉소를 쏟아내고, 선영은 “결국 누구도 내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빠진다. 이때 민혁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화와 상처가 생긴다.

    4) 진실과 화해

    극단으로 치달은 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 국면에 들어선 것은, 교내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벌인 상철이 징계를 받으면서부터다. 하지만 작가는 완벽한 해소나 보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상철의 가정 폭력, 선영의 불우함, 민혁의 내면적 상처 등이 남아 있는 가운데, “작은 희망의 씨앗”만이 보여질 뿐이다. 선영은 어머니와 갈등을 겪은 뒤, 서로의 아픔을 조금씩 이해하려 하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4. 작품 특징

    1) 사회적 소외와 청소년 문제

    『구의 증명』은 청소년기의 폭력과 소외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 문제와 가정 문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가난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어떻게 상처를 주고받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용서와 연대를 시도하는지를 세밀하게 그려 낸다.

    2) 섬세한 심리 묘사

    최진영은 인물들의 감정을 장황하게 서술하기보다는, 간결하면서도 생생한 문장으로 심리 변화를 포착한다. 선영과 상철, 민혁 등 각 캐릭터가 지닌 내면의 진동이 절제된 표현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로써 독자는 사소한 말투와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복합적 감정을 짚어 볼 수 있다.

    3) 희망과 절망의 교차

    작품 내내 절망이 짙게 깔려 있지만, 아예 구제불능의 암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영과 민혁이 교감하고,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에서는 희망의 가능성이 언뜻 보인다. 이 희망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노력한다”는 태도에 가깝다.

    5. 결론

    1) 관계를 통해 증명되는 구(球)

    『구의 증명』이라는 제목은 수학적 맥락의 ‘구(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구’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밀폐된 세계이자, 동시에 어둠 속에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최진영은 “폭력과 결핍으로 얼룩진 삶이라도, 결국 관계를 통해 ‘둥글게’ 맞물려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은 청소년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소외와 화해, 그리고 연대에 관한 날카로운 성찰을 담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