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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상처와 기억, 그리고 연대의 서사

    1. 책 소개

    1) 개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순간을 배경 삼아, 생존자와 주변인들이 짊어진 상처와 기억을 섬세하게 그려 낸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인간이 겪는 고통과 그에 맞서는 연대의 가능성을 주제 삼아, 가슴 저미는 서사를 담아냈다. 『채식주의자』나 『흰』 등의 작품에서 독특한 문체와 서정성을 드러냈던 한강은, 이 소설에서도 비극적 역사와 개인적 상흔을 겹쳐 놓으며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2. 등장인물

    1) 경하

    소설의 중심을 이끄는 인물로, 과거의 상처를 견디며 살아온 여성이다. 어린 시절 겪은 잔혹한 사건과 가족의 비극이 그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경하는 과거를 외면하려고 애쓰지만, 어느 순간 그 기억이 재현되면서 다시금 트라우마와 직면하게 된다. 내면에 깊이 새겨진 고통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지닌 상처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동시에 고통을 나눌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다.

    2) 재영

    경하의 친구이자 동료로, 소설에서 경하의 과거를 함께 추적하는 협력자다.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경하를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동행하며, 그녀가 무너질까 봐 염려한다. 재영은 매사에 합리적이고 차분한 인물이지만, 잔혹했던 사건을 접하며 스스로도 심적 동요를 느낀다. 그럼에도 경하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연대의 표상이 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3) 노년의 생존자들

    소설 속에서 중심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노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극도의 공포를 겪었음에도 오래 살아남아, 끊임없이 과거를 곱씹는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통해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가 아니라 “살아남았음에도 왜 상처가 지워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들은 경하에게도 과거의 일부 진실을 전해 주며, 침묵 속에 묻힌 역사를 회상한다.

    3. 줄거리

    1) 비극의 흔적과 재회

    소설은 경하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어떤 사건의 실마리를 우연히 접하면서 시작된다. 해당 사건은 어린 시절 한 마을에서 벌어진 집단적 폭력과 학살에 관한 것으로, 경하는 그날의 기억을 어렴풋이 지니고 있지만 상세한 전모를 알지 못한다. 재영의 도움으로 경하는 당시 생존자와 접촉하게 되고, 그들은 사라진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유해와 기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2) 기억을 좇는 여정

    경하와 재영은 사건이 벌어진 폐허의 마을을 찾으며, 그 장소가 지닌 참혹함에 압도된다. 무너진 집과 길, 이름 모를 무덤들이 시선을 붙잡고, 살아남은 노인들은 이미 목격자임에도 계속 침묵한다. 왜 이들은 입을 열지 않는가? 과거의 폭력이 얼마나 잔혹했기에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상처가 아물지 않는가? 소설은 이런 의문을 끌고 가며, 경하가 과거의 실체와 마주함으로써 겪는 고통을 정면에 세운다.

    3) 결말과 희미한 희망

    이야기의 말미에서 경하는 자신과 가족이 겪었던 참사를 구체적으로 직면하게 된다. 동시에, 그날의 진실을 덮으려 했던 이들의 흔적도 드러난다. 작가는 완전한 해소나 복수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대로, 아물지 않은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다만, 경하와 재영이 맞이하는 작은 변화 속에는 앞으로의 삶에서 서로를 지탱해 줄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절망만이 아닌 미묘한 희망의 실마리를 남긴다.

    4. 작품 특징

    1)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트라우마

    한강은 이전 작품들에서도 폭력과 상흔,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져 왔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더욱 선명한 역사적 사건을 암시하며, 그 비극이 한 개인의 트라우마로 이어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린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묵직한 분위기를 통해, 역사적 고통이 일상의 세밀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포착해 낸다.

    2) 함축적 서술과 상징

    작가는 참혹한 장면을 노골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은유와 상징을 활용해 독자의 상상 속에 이미지를 그려 넣는다. 무너진 마을과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과정, 그리고 침묵하는 생존자들의 모습은 “말할 수 없는 것”의 무거움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끝내 작별하지 않는 태도는, 역사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5. 감상과 의미

    1) 계속되는 상처와 연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한강은 비극을 단숨에 해결하거나 매듭짓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 준다. 이는 독자에게 과거에 대한 책임현재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경하와 재영, 그리고 노인들의 고통이 겹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억의 힘을 재발견한다.

    2) 언어의 절제와 깊이

    간결한 문장 속에 꽤 많은 함의를 담는 한강의 작법은, 이 작품에서 더욱 돋보인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독자가 느끼는 감정적 압박과 여운은 상당하다. 이처럼 절제된 서술 덕분에 폭력의 잔혹함과 애도의 슬픔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며, 독자로 하여금 한 문장 한 문장 곱씹게 만든다.

    6. 결론

    1) 부정할 수 없는 아픔, 그러나 작별하지 않는다

    결국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개인의 삶에 투영하여, 그 잔혹함과 슬픔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지를 섬세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경하가 다시 마주한 과거의 진실은 너무나 아프지만, 동시에 “작별하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결심을 가능케 한다. 이것은 한 개인의 트라우마가 사회적 기억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진정한 애도와 연대가 실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소설 전체가 내뿜는 침묵과 슬픔의 공기는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고통과 역사적 책임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만들며, 최종적으로는 인간애와 희망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시하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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